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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齋 白斗鏞

Baek DuYong

  • 해동역대명가필보 6책 완질

海東歷代 名家筆譜 六冊 完帙

Master Calligrapher's Text Compilation of Joseon Peninsula 6 Books

목판본
Block Book

26.8×19.3㎝(6EA)

서첩

추정가

  • KRW  500,000 ~ 1,500,000
  • USD   430 ~ 1,280
  • JPY     47,000 ~ 139,000

낙찰가

유찰

작가 소개

백두용은 오늘날 충남 부여군에 해당하는 임천(林川)지방에서 1872년에 태어났다. 원래 그의 집안은 중인계급에 속하는 화원(畫員)집안이었다 그의 자(字)는 건칠(建七)이고, 위로 형 백세용(白世鏞)이 있다. 백두용가 16세 되던 해인 1888년(고종 25)에 식년시(式年試)가 열렸는데 역과(譯科)2위의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 후로 한학(漢學) 전공 역관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30세에 광제원(廣濟院) 사무위원으로 활동했다. 광제원은 광혜원과 더불어 고종의 명으로 궁내에 설치된 병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19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노변(路邊)에서 책을 팔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서적판매업에 뛰어들었다. 초창기에는 간판도 달지 못하고 영세한 규모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는 서점 경영 외에 여러 모임에 참여해 뜻 있는 활동을 벌였다. 36세인 1908년부터 기호흥학회 찬무원(贊務員)으로 활동하는데, 이때 이 모임에는 고유상(高裕相, 회동서관), 현채(玄采, 대창서원), 남궁준(유일서관), 노익형(박문서관), 김정진(金正珍)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백두용처럼 서점을 경영하던 서적상으로, 상인 이전에 지식인으로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에 그 나름대로 동참하려는 의식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초창기 한남서림은 단순히 도서를 판매하던 서점에 불과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서점처럼 출판업도 겸하게 되었다. 당시 백두용은 인맥이 넓고 평도 좋아 주위에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 종교인들이 그의 서점을 드나들고 한남서림 출판물의 독자가 되었다. 1910년대 전반부에 한남서림 개업을 축하하는 시문첩인 『가장도서첩(家藏圖書帖)』을 만들었는데, 이때 축하시문으로 글을 남긴 이들만 무려 324명에 달했다.
백두용은 1920년에 설립된 조선도서주식회사(朝鮮圖書株式會社)의 대주주가 되어 수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전 6권짜리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를 야심작으로 내놓았다.
백두용의 사망 전후로 하여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이 1932년에 한남서림을 인수한 후 실무는 백두용 밑에서 일하던 김동규(金同圭)가 그대로 맡도록 하되 친척 조카에게 1~2년 한남서림을 경영케 한 후, 오세창이 길러낸 문화재 중개상인 이순황(李淳璜)에게 경영을 맡기게 되었다. 그 후로 전형필은 한남서림을 거점삼아 문화재 수집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