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宅成 呑虛

TanHeo Buddhist Monk

  • 휘호('화리생연')

揮毫('火裏生蓮')

Calligraphy('Hwa-Ri-Saeng-Yeon')

지본묵서
Ink on Paper

34×132㎝

좌측 하단에 낙관

족자

추정가

  • KRW  700,000 ~ 2,000,000
  • USD   600 ~ 1,710
  • JPY     65,000 ~ 185,000

낙찰가

KRW 800,000

작품 상세 설명

火裏生蓮 화리생연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 연꽃이 핀다

작가 소개

본관은 경주(慶州). 속명은 김금택(金金鐸). 법호는 탄허(呑虛). 법명은 택성(宅成). 전라북도 김제 출신. 아버지는 홍규(洪圭)이다.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을 지내며 『화엄경』을 비롯한 수십여 권의 불교 문헌을 현토·역해하였다.
14세까지 부친에게서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유학의 전 과정을 공부하였다. 15세인 1927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면암(勉庵)최익현(崔益鉉)의 제자 이극종(李極鍾)으로부터 유학과 노장철학(老莊哲學)을 공부한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의 한암(漢巖)과 3년간 서신 왕래 끝에 22세인 1934년한암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서장(書狀)을 공부하였으나 의미를 알 수 없어, 3년 동안 묵언참선(默言參禪)을 한 뒤에 참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참선과 더불어 경전을 수학하여, 1937년 상원사에서 개오(開悟)하고 한암에게서 탄허(呑虛)라는 법호를 받았다.
1953년월정사(月精寺) 조실, 1955년강원도 종무원장을 역임하였다. 같은 해 월정사에 수도원(修道院)을 창설, 불교 신도 교육에 힘썼다. 1959년『육조단경(六祖壇經)』을 현토·역해하고 이어서 각 편으로 흩어진 보조국사 어록을 『보조법어(普照法語)』라는 한권의 책으로 결집하고 현토·역해하여 간행하였다.
1967년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 동국역경원 증의위원, 1972년화엄학연구소 소장, 1975년∼1983년 동국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도 역경 사업은 계속하였다. 1961년 『화엄경(華嚴經)』 번역에 착수하여 원전(原典) 80권과 통현(通玄)의 『화엄론』 40권, 징관(澄觀)의 『화엄경』주석서 150권을 간추리고 주석을 붙여, 원고지 총 6만 3,000여 장에 달하는 원고를, 하루 14시간씩 약 10년간에 걸쳐 현토·역해하여 1974년『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 47권을 간행하였다.
같은 해 『서장(書狀)』 1권, 『도서(都序)』 1권, 『선요(禪要)』 1권, 『절요(節要)』 1권을 현토·역해 간행하였다. 또한, 총 21권의 강원 교재를 현토·역해하여 불교 교육의 확고한 지침을 제고하였는데, 1975년『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1권, 1975년『치문(緇門)』 2권, 1979년『능엄경(楞嚴經)』 5권, 1979년『금강경(金剛經)』 3권, 『기신론(起信論)』 3권 등을 발간하였다.
이밖에 1982년『주역선해(周易禪解)』 1권, 1983년『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1권, 1986년『영가집(永嘉集)』 1권, 미간인『장자남화경(莊子南華經)』 등 총 77권, 십여 만장의 방대한 한문 원전을 현토·역해하여 동양사상과 대승불교의 이해에 기여하였다.
그가 지은 금석문(金石文)으로 청담(靑潭)·춘성(春城)·경산(慶山)·추담(秋潭) 등의 대종사비가 있고, 태백산 단종대왕비(端宗大王碑) 등 17여 개의 비문이 있으며, 28여 회의 대담, 선필(禪筆) 등이 남아 있다. 그의 어록집으로는 1980년『부처님이 계신다면』과 1997년『피안으로 이끄는 사자후』가 있다.
세수 71세, 법랍 49세로 1983년 6월 5일 월정사에서 입적하였다.
1975년에 『화엄경』 간행 업적으로 인촌문화상(仁村文化賞)을 수상하였다. 1983년국민훈장이 추서되었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종정상을 수여하여 생전의 업적을 기렸다.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어 상원사한암의 승탑 옆에 승탑과 비석을 건립하였다. 그의 제자들은 탄허불교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삼일선원과 보광명사를 운영하며 유업을 계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