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도팔양 都八洋Do PallYang

1945 ~ 1985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대구 미술연구소
  • 프랑스 파리, 그랑드 쇼미엘 수학
  • 전시
  • 1982~83 개인전 (프랑스 파리, 일본 큐슈 오이시화랑, 대구 등)
  • 단체전
  • 삿도르 반센느전(파리)
  • 경북미술대전특선 2회
  • 목우회전 특선 2회
  • 동아미술대전 입선 4회
  • 국전 특선
  • 프랑스 르살롱전 입선 5회
  • 등 전시
  • 수상
  • 목우회전 문예진흥원장상
  • 프랑스 르살롱전 동상
  • 1976 경북미술대전 최우수상

작가 소개

도팔양은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이 된 후 귀국하여 진주 사천의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진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다. 대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 선생의 추천으로 대구 미술연구소에서 본격적인 데생 공부를 시작했고, 이 때부터 그는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포기해야했다. 이후 육군에 지원, 야전 공병단에 근무하다가 월남전에 참전하면서 청년기를 맞는다. 전쟁에서 오는 처절한 비애와 비참한 생을 경험한 그는 무서운 집념으로 인간 회복을 절규하며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한다. 초기에는 어떠한 것도 이상화하거나 숭고하게 표현, 미화시키지 않았다. 그는 가난하면서도 순수하게 살아가는 농촌의 모습이나 깊숙한 골방을 화폭에 담고, 순수한 예술적 정열로 사회정의를 외치며 사회 개혁에 대한 설교를 하려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의 작품은 성숙의 도를 더해 갔고, 결국 거듭된 국전에서의 낙선을 끝맺음 짓고, 4회의 입선과 미술대전에서의 특선으로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81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1년간 그랑드 쇼미엘에서 수학하며 여러 전시회에 출품 및 수상을 하였고, 귀국하여 대구에서 활동하였다.
도팔양은 논리적인 화면구성을 싫어했고 격렬한 감정을 화폭에 담아 그의 화면에서는 고독과 열등감이 폭발하며, 아울러 새로운 경향에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그는 자기를 낳게 하고 자기를 가장 귀하게 보살펴 주던 자연이 기계문명으로 인해 소멸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자기 자신과 비전을 병행시켜 화폭에 담고 인간 세상에 필요한 마음의 양식을 제작하였다.
1985년 10월 9일에 포항에서 스케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현재 두 아들인 빛의 이미지에 주목해 안개 자욱한 숲과 나무를 그리는 도성욱과 카지노와 주사위ㆍ칩을 소재로 현대문명의 이면을 드러내는 두민(예명)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김달진미술연구소, 남충모.

작가의 경매 작품

제 36회 봄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