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철재 오옥진 鐵齋 吳玉鎭Oh OkJin

1935 ~ 2014

한국

서각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

작가약력

  • 1935년 출생
  • 1953년 대통령상 수상
  • 1955년 오영균, 오병균 사사
  • 1958년 해군참모총장상 수상
  • 1970년 신학균 선생 전통 각자법 사사
  • 1970년 오금석, 오성균 각자연원과 위선사상 및 의의 사사
  • 1978년 철재 오옥진 서각연구실 개설
  • 198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 1982년 한국서각협회 창립 회장
  • 1985년 한글학회 공로 표창 수상
  • 1985년 서울 정도육백년 기념 자랑스런 서울시민 선정
  • 1986년 대한민국 국가유공자 기장 수장
  • 1986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감사장
  • 1990년 한국서각가협회 회장
  • 1991년 산림청 임업연구원 감사장
  •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기능보유자 지정
  • 1996년 철재 오옥진 각서전
  •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및 해외 전시 등 다수 전시 출품
  • 2000년 마포문화원 전문위원
  • 2003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부이사장

작가 소개

1935년 충북 청원군 현도면 달계리에서 태어난 오옥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경기도 부평으로 이사 와서 집안 형편으로 인해 동양공업중학교 3학년까지만 마쳤다. 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잇기 위해 빙과 장사, 생선 장사 등 온갖 일을 했으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1년 해병대에 입대하여 4년간 복무하였다. 전쟁 중에 수류탄 파편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오옥진은 1955년 아버지와 함께 도장 파는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칼을 만지게 되었다. 어깨 너머로 도장 일을 배우던 오옥진이 22세 되던 1957년, 각자 일을 하던 셋째 작은아버지로부터 각자 권유를 받았다. 숙부는 오옥진에게 도장파는 법과 나무 다루는 기술, 각자의 연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1957년 국립중앙직업보도소 목공예과에 입학하여 목공예에 관한 기초 교육을 받았다. 성적이 좋아서 국방부, 내무부, 보건사회부, 상공부 4부 장관의 연면통첩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수양아들이 운영하던 당시 최고의 기업이었던 중앙산업이라는 가구 공장에 취직을 했다. 5.16이후 그곳을 그만두고, 서른 한 살 때 보훈처의 소개로 동아일보 영선과에 목수로 취직해 8년 4개월간 있었다. 당시 영선과의 다른 두 사람은 집 짓는 건축쪽 전문이고, 오옥진은 목공예 담당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이희승 박사나 사장이 소장하고 있던 옛날 목물(木物)들을 고쳐 주면서 그들과 가까워졌고, 그 끝으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어 많은 도움들을 받았다. 그러면서 여러 유명인사들과 같이 다니면서 고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다.
위와 같은 경험들이 계기가 되어 각자 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위해 안정적이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당시 서각가(書刻家)로 유명했던 신학균 선생으로부터 각자에 관해 가르침을 받고 이후 재주와 기량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오옥진은 단절되어 가던 각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자장으로서 전통문화의 계승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각자에 필요한 공부를 찾아 했다.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문하에서 8년간 서예를 배웠고,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청명 임창순에게 2년 6개월간 한문을 수학하였다. 틈틈이 숙부에게 선인들의 각자에 대한 태도와 방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으며, 각자를 철저히 하기 위해 기초를 닦았다. 이밖에 통문관의 이겸로, 연민 이가원, 공예부문 문화재 전문위원이었던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종석 등과 각자장의 긍지와 사명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멸실되었거나 멸실 위기에 있는 국보, 보물급 각자 판본의 복원 의의에 대한 설명은 선생의 생생한 지식을 형성함과 동시에 각자의 기능적 성장도 아울러 촉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옥진은 옛 판본의 복원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국보 70호인 [훈민정음](33판)을 비롯하여 [농가월령가](68판), [고려가요](56판), [대동여지도](1~3층), [화성전도도설], [부모은중경도설](14판), [수선전도] 등을 복원하였다. 오옥진은 인출을 위한 전통 목판 각자법을 계승하였을 뿐 아니라, 정서각(正書刻)인 현판 제작에도 뛰어난 기능을 인정받고 있다. 경복궁의 <자선당> 현판을 비롯해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등 고궁과 송광사, 화엄사, 금산사 등 고찰의 현판 복원에 참여했으며, 독립기념관, 국립국악원, 국립국어연구원, 현충사 등 중요 건물의 현판 제작도 도맡아 했다.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오옥진의 문하를 거쳐간 제자만 300여 명이 되고, 그 제자의 제자, 제자 등을 합치면 1000여명이 넘는다. 현재 한국서각협회, 철제각연회 등 국내 주요 각자 단체의 회원은 열에 아홉이 오옥진에게 수학하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출처/한국문화재단의 무형문화재 이야기, 두산백과

작가의 경매 작품

제48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 53회 장터경매

제 50회 장터경매

제36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 36회 장터경매

제18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 44회 봄경매

제15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14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13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10회 I Contact 온라인경매

제 39회 겨울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