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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일천 陰一天Eum IlCheon

1903 ~ 1973

한국

화각장(華刻匠)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刻匠)

작가약력

작가 소개

음일천(陰一天)은 서울 태생으로 본명은 진갑(辰甲)이고, 일천(一天)은 호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대외적 관계에서 본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동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배재학당(배재고동보통학교) 2학년을 수료하고 간도에 있는 영신학교로 전학하여 학업을 마친 후 서울에 돌아와 조부 때부터 2대째 가업인 각질장(角質匠) 겸 대모공장(玳瑁工匠)의 일에 입문했다. 부친 음성대(陰成大)는 고종 때 한성에서 가장 솜씨 있는 각질장으로서 풍잠․관자․안경테 등을 왕실에 납품하기도 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대모 안경테를 일본에서 주문받아 수출하는 등 일본에까지 잘 알려진 장언이었다. 부친의 가업에 종사한 가업 3대째의 음일천은 자연스럽게 부친과 교분이 있는 일본의 민속학자들과 사귀게 된다. 특히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인 오쿠다미라 다케히코(與平武彦)와 조선 공예를 연구한 민속학자 하마구치 요시미츠(濱口良光)와는 해방 때까지 친밀한 관계를 지니면서 조선의 민속 공예 조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각질 공예의 한 분야로서 특수한 변모를 지닌 화각 공예가 침체되어 있음을 보고 1923년 경에 양화진 화각 공방을 수차례 답사하면서 당시 최고령 화각장인 차(車)씨 성의 노인에게 서너 차례 기술 전수를 받고 화각 소품을 만들어 보면서 부친의 일을 물려받고 있던 때 하마구치의 요청으로 1939년 12월에 본격적인 화각장공예품 3점을 만들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화각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하마구치는 음일천에게 제작을 의뢰한 화각 상자 2점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1940)’에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유사 이래 최초로 화각 작품이 중요전람회에 등장되었고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음으로써 음일천은 화각장 공예품 제작 공방을 본격화하고 더욱 정진하게 된 것이다.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며 아들인 음승기(陰勝基)와 문하생으로 이재만 화각장 등에게 기술을 전수하였다. 아들 음승기는 1970년 경에 수족 마비로 더 이상 작업이 불가능해진 음일천 화각장을 모시면서 가업을 이어나가는 등 다년간 노력하였으나 실패하고 1990년대 초에 작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만(李在萬, 1953- )은 현재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刻匠)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음일천의 문하생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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