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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공 스님 呑空TanGong Buddhist Monk

1881 ~ 1998

한국

작가약력

  • 1881(고종 18)~1998. 무계파(無系派) 승려.

작가 소개

탄공 선사는 경북 상주군 내서면에서 1881년, 불기 2425년에 탄생했다. 유복자로 태어나 생후 두 달 만에 어머님마저 돌아가 상주 군수이신 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재력이 상당했던 조부님은 5대 독자로서 손자에게 사랑을 듬뿍 심어주다가 4살 때 대전사에 산림과 논을 시주하고 손자를 맡겼다. 그로부터 5년 뒤 호명당 선사로부터 불법을 배우고 탄공(呑空) 불명을 받았다. 선사가 19세 때 조선 황실에서 실시한 화공백일장(국전의 전신)에 장원하여 고종으로부터 극찬을 받고 진사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고사하고 부상만 받았다. 그 뒤 29세까지 10년간 백양사에서 송만암·송만공 및 성철스님의 은사 하동산 스님과 함께 용맹전진했다.
1913년 이후에는 대구광역시 소재 용연사(당시 달성군 옥포)에서 3년간 수도하며 노태우 전 대통령 부친과 국내 명리학 제1인자였던 도계 박재완을 지도했다. 1919년에는 경북 의성군 소재 고운사로 옮겨 수도 정진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일경들이 동포들을 잔인하게 구타하고 17~18세 부녀자들을 능욕하는 현장을 목격하자 의분을 참지 못해 왜경을 습격, 응징한 후 금강산으로 입산했다. 1931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사에서 6개월간 수행하다가 이듬해 1월 8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의거를 전후하여 상해 임시정부 지하 사무실에서 백범 김구를 만나 그동안 몰래 장만한 독립자금을 전달했다. 이때 백범은 5살 연하인 선사에게 “탄공 스님의 조국애에 감사드린다.”며 합장 답례했다. 그 뒤 다시 귀국하여 금강산 동우굴에서 정진 중 해방을 맞이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선사는 곧 금강산을 떠나 지리산, 속리산, 설악산, 팔공산,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도장산 등 전국 각지의 사찰을 순례 정진했다. 1986년부터 충북 청원군 남이면 척산리 탄공정사에서 대중포교를 하였다. 1998년 5월 25일에 118세로 좌탈 열반하였다. 불교계에서 좌탈 열반 스님으로는 근세 방한암 스님이 계셨지만 백세가 넘은 고령으로는 탄공 선사가 역사상 처음이다.
출처/월간 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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