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작품이미지

에블린 맥퀸 Evelyn Becker McCune

1907 ~ 2012

미국

작가약력

작가 소개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난 에블린 맥퀸(Evelyn McCune)은 10살 때까지 평양에서 지내다 아버지 아서 베커(Aarthur Lynn Becker, 한국명 白雅悳)를 따라 귀국했다. 부친은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초기 학감과 화학과 교수로 재직(1915~1940년)하며 한국 과학교육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에블린 맥퀸은 유년 시절의 추억, 부친과 남편 조지 M. 맥퀸(George M. McCune)의 영향을 받아 지금도 한국문화도서로 읽히고 있는 [한국의 미술](1962년)을 펴냈다. 평양에서 어린 시절 친구로 자란 남편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표시하는 표기법인 ‘맥퀸-라이샤워 체계’를 만들었고, 1948년 작고 할 때까지 초기 한미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아버지는 평양숭실학교 설립자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던 선교사 S. 맥퀸(Dr. George S. McCunne, 한국명 윤산온 尹山溫)이다.
에블린 맥퀸은 어려서부터 만주, 시베리아, 중국등을 여행하면서 동북 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축적하였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의 폭을 넓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극동문제에 대한 강의를 하던 즈음 결혼한 뒤 남편 맥퀸이 연희전문의 교수로 일하게 되자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한국문화연구소 활동을 하였다. 1948년 이후 계속 미국에 거주하며 한국전쟁 때 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에서 한국에 대한 원조정책에 관여하였으며,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 정치 등에 대해 연구하였다. 에블린 맥퀸의 동양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와 한국에서의 경험은 [한국의 미술](The Arts of Korea)을 집필하는 바탕이 되었다. 미국인의 그가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며 얻은 경험은 그로 하여금 한국미의 특성을 정치적인 시선으로 파악하게 하였다. 정치 변혁기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한국전쟁기 한국민의 가난과 외부세계에 의한 전통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에블린 맥퀸은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가까이에서 보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서양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때로 한국인보다도 한국미술에 대해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 내 미국인이라는 위치뿐만 아니라 남편과 그들의 부모가 공유한 한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기인한다.
출처/서울현대미술연구소, 연합뉴스

작가의 경매 작품

제13회 I Contact 온라인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