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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매 오경석 亦梅 吳慶錫Oh GyeongSeok

1831 ~ 1879

조선

서화

작가약력

  • 1831(순조 31)∼1879(고종 16). 역관·서화가·금석학자.

작가 소개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원거(元秬), 호는 역매(亦梅)·진재(鎭齋)·천죽재(天竹齋).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당상역관이며 지중추부사를 지낸 오응현(吳膺賢)이고, 아들은 3·1운동 33인의 한 사람인 오세창(吳世昌)이다. 조선 말기의 개화사상의 비조라 할 수 있다.
중인(中人) 출신으로 역관이 되어 청(淸)나라에 왕래, 신학문에 눈을 떠서 《해국도지(海國圖誌)》 《영환지략(瀛環誌略)》 등 서적을 들여와 친구인 유홍기(劉鴻基)에게 읽게 하고,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홍영식(洪英植) 등 소장 정치인들을 지도하여 개화파를 형성하게 하였다. 1869년 통정대부, 1873년 가선대부, 1875년 자헌(資憲)대부가 되고 이듬해 한학당상역관(漢學堂上譯官)으로 좌의정 박규수(朴珪壽)와 함께 나라의 문호개방을 주장, 병자수호조약(丙子條好條約:일명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하였다. 1877년 숭정(崇政) 대부를 거쳐 숭록(崇祿) 대부가 되었다. 쇄국 정책에 반대하고 문호의 개방과 선진 문명의 수입을 주장했고 수호조약 체결 이후에는 흥선대원군의 위협을 받았다. 강화도조약 직후 병석에 누운 뒤 회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서화 수집에 취미를 가져 중국과 국내에서 방대하고 희귀한 서화들을 수집·수장하였다. 매화를 잘 그려 일가를 이루었고, 예서(隷書)와 전자(篆字)를 잘 썼다. 금석학에도 일가를 이루어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을 지었으며, 각지의 비석과 유적을 두루 답사하였다. 저서로는 『삼한금석록』 외에 『삼한방비록(三韓訪碑錄)』·『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양요기록(洋擾記錄)』 등이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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