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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봉 안규용 晦峰 安圭鏞Ahn GyuYong

1873 ~ 1959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73(고종 10)∼1959. 조선 후기의 문신.

작가 소개

본관은 죽산(竹山[新]). 호는 회봉(晦峰). 1873년(고종 10) 7월 28일 보성(寶城) 옥평(玉坪)에서 안풍환(安豊煥)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는 29세 때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1921년 보성 진봉(眞鳳)에 죽곡정사(竹谷精舍)를 짓고 강학을 시작하였다. 이후로 『향례합편(鄕禮合編)』‧『주문지결(朱門旨訣)』‧『동몽수지(童蒙須知)』‧『주자학칙(朱子學則)』을 간행하였다. 1934년에 일제가 서당인가를 받으라고 독촉하자 8월 문인들을 해산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초막을 짓고 은거하였다. 1936년 그의 나이 64세 때 문인 박규현(朴奎鉉)의 일기가 문제가 되어 아들인 안종선(安鍾宣)과 함께 일경에 구속되어 구례(求禮)와 광주(光州) 등지에 3개월 동안 구금되었다. 이후 1959년 8월 19일 보성 원봉에 있는 낙재(樂齋)에서 향년 87세의 인생을 마감하였다.
회봉은 성리설의 심통성정(心統性情)의 뜻을 마음이 본성과 감성을 통합한다고 해석하면서 등불이 열과 빛을 내포하고 있는 것에 비유하여 간명하게 파악하였다. 따라서 그는 간재(艮齋) 전우(田愚)가 본성과 마음을 스승와 제자에 비유한 것[性師心弟說]은 마음의 통합적 전체성에 벗어난 것이라 비판하고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가 마음과 성품을 임금과 백성에 비유한 것[心君性兆民說]은 성품이 본성지성을 벗어난 것이라 비판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리학을 ‘성품을 따르고 이치를 따르는 것’이라고 소박하고도 실천적 성격으로 규정하면서 번쇄한 분석보다 일상적 도리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곧 도학의 본래정신으로서 의리에 근거한 현실적 실천성의 회복을 추구한 것이다.
그는 「사설(士說)」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어 왔던 선비의 이념과 위치를 도학의 기반이 붕괴되는 시대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그는 ‘선비는 귀한 것도 천한 것도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 귀하고 크다고 꼭 선비가 되지도 않으며 천하고 작다하여 꼭 선비가 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선비는 도덕과 인의를 밝혀서 진실로 크게 꿰뚫어 보며 굳세게 뜻을 세우고 값지고 드문 뜻을 풀어서 우주 가운데 우뚝하게 서는 것이니....’라고 주장하여 굳건한 자율적 인격 주체로서의 선비 상을 재천명함으로써 도학이념을 계승할 수 있는 기반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출처/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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