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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 高宗Emperor GoJong

1852 ~ 1919

조선·근대

작가약력

  • 1852(철종 3)∼1919. 조선 제26대 왕.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 1863∼1907).

작가 소개

초휘(初諱) 재황(載晃). 아명(兒名) 명복(命福). 초자(初字) 명부(明夫). 자 성림(聖臨). 호 주연(珠淵). 영조의 현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다. 비(妃)는 명성황후로,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치록(致祿)의 딸이다. 1863년(철종 14) 12월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조대비(趙大妃)의 전교(傳敎)로 12세에 즉위하였다. 새 왕의 나이가 어리므로 예에 따라 조대비가 수렴청정하였으나, 대정(大政)을 협찬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은 대원군에게 넘어가 이로부터 대원군의 10년 집정시대가 열렸다.
척신(戚臣) 세도정치의 배제, 붕당문벌(朋黨門閥)의 폐해 타파, 당파를 초월한 인재의 등용, 의정부의 권한 부활에 따른 비변사(備邊司)의 폐지 및 삼군부(三軍府)의 설치, 한강 양화진(楊花津)의 포대(砲臺) 구축에 따른 경도수비(京都守備) 강화, 양반으로부터의 신포징수(身布徵收), 양반 유생의 발호 엄단 등은 고종 초기 10년 동안 대원군이 이룩한 치적이다. 그러나 경복궁 중수(重修)에 따른 국가재정의 파탄, 악화(惡貨)인 당백전(當百錢)의 주조(鑄造)와 민생의 피폐, 과중한 노역(勞役)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과 소요, 가톨릭교 탄압에 따른 8,000여 명의 교도 학살, 통상수교거부정책, 병인양요(丙寅洋擾), 신미양요(辛未洋擾) 등 어두운 정치적 자취를 남기고 1873년(고종 10) 11월, 명성황후의 공작에 따라 대원군이 섭정에서 물러나자 고종이 친정(親政)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명성황후와 그 일족인 민승호 · 민겸호 · 민태호로 대표되는 민씨 일문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고종은 이때부터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국난을 헤쳐 나가야 했다.
1875년 일본이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문호 개방을 강요하게 되고,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새로운 문물이 수입되면서 조선에서는 개화와 보수 세력이 대립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제도에 대한 반동으로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대원군이 재집권하게 되나, 민씨 정권의 요청으로 청 군대가 파병되면서 군란은 진압되고 민씨 일파의 재집권이 이뤄진다. 임오군란 이후 친청 세력이 개화당을 탄압하게 되자,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이 발발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청의 내정간섭은 더욱 심해진다. 그러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 청 · 일 전쟁을 유발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친일 내각을 성립시키고 갑오개혁을 단행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명성황후와 민씨 일파가 친러파와 손을 잡고 친일 내각을 무너뜨리려 하자, 일본은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미사변)을 일으킨다. 이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하고, 1년 뒤인 1897년 2월 경운궁(후의 덕수궁)으로 환궁하였다. 그리고 그해 8월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치고, 10월에는 국호를 대한제국, 왕을 황제라 하여 자주 독립국가임을 선포하였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강력한 전제군주권의 확립과 부국강병 등을 목표로 광무개혁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일본의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이를 알리기 위해 1907년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릴 때 밀사 이준 등을 파견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였다.(헤이그 특사사건)
이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황제의 퇴위를 종용했으며, 1907년 7월 20일 고종은 황태자(순종)에게 양위(讓位)한 후 퇴위하였다. 고종은 순종황제로부터 태황제(太皇帝)의 칭호를 받고 덕수궁에서 만년을 보내다가 1919년 1월 21일 승하하였다. 고종의 사망으로 항일 감정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고종의 장례일인 3월 3일(인산일)에 맞추어 3.1운동이 촉발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시사상식사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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