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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 동기창 思白 董其昌Dong QiChang

1555 ~ 1636

중국 명

서화

작가약력

  • 1555(명 가청 34)~1636(승정 9).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화가 겸 서예가.

작가 소개

자 현재(玄宰). 호 사백(思白) ·향광(香光) ·사옹(思翁). 시호 문민(文敏). 장쑤성[江蘇省] 화팅현[華亭縣] 출생. 1589년에 진사가 되고, 남경예부상서(南京禮部尙書)가 되었으나 환관의 횡포와 당쟁 때문에 사임하고, 1631년 옛 자리로 복귀하여 3년 후 태자태보(太子太保)가 되었다가 사임하였다. 사후에 태자태부(太子太傅)의 벼슬이 추증되었다. 관리로서도 명성이 높았으나 문명(文名)도 높아 시인 ·서가 ·문인화가로서 널리 알려졌고, 감식(鑑識) ·감장(鑑藏) ·임모(臨模) 등에도 업적을 남겼다.
명나라 말 제일의 인물이었으므로 당시의 화단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고 화풍이나 소론(所論)은 후세 오파(吳派) 문인화가에게 결정적 감화를 주었다. 저서인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남종화(南宗畵)를 북종화(北宗畵)보다도 더 정통적인 화풍으로 한다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을 주창하였다.
그림은 동원(董源) ·거연(巨然)을 스승으로 모셨고 송(宋) ·원(元)의 화가들의 장점을 빠짐없이 수집하고, 심석전(沈石田) ·문징명(文徵明) 등의 오파문인화(吳派文人畵)의 남종화풍을 계승 발전시켜 근거를 원나라의 황공망(黃公望)에게서 찾았다.
스스로 고아수윤(古雅秀潤)이라고 부르던 화풍으로, 먹물 빛깔의 변화가 풍부하고 간명한 산수화를 많이 남겨 창작과 실제화업(實際畵業)을 화론(畵論)과 병행하여 전개하였다. 문학에도 능통하였고, 서가로서도 명대 제일이라고 불리며 형동(邢侗)과 어깨를 겨루어, 북형남동(北邢南董)이라 불린다.
서체는 왕희지(王羲之)를 주종으로 삼으면서도 글씨 체형보다 내용을 더 추구하여 당시 제일의 문인으로 각 방면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저서로 《산수화책(山水畵册)》 《용태집(容台集)》 등이 있다. 대표작은 『형계초은도권(荊溪招隱圖卷)』(1613뉴욕 개인 소장), 『청변산도(靑弁山圖)』(1617 클리브랜드 미술관) 등이 있다.
출처/미술대사전(인명편),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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