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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 휴정 스님 西山大師 休靜HyuJeong Buddhist Monk

1520 ~ 1604

조선

작가약력

  • 1520(중종 15)~1604(선조37). 조선 중기 『청허당집』, 『선교결』, 『심법요초』 등을 저술한 승려·승군장(僧軍將).

작가 소개

본관 완산(完山). 속성 최(崔). 자 현응(玄應). 호 청허(淸虛)·서산(西山). 속명 여신(汝信). 안주(安州) 출생. 1534년(중종 29) 진사시(進士試)에 낙방하자 지리산(智異山)에 입산, 숭인(崇仁) 문하에서 승려가 되어 《전등록(傳燈錄)》과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배웠다. 그 후 일선(一禪)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하였다.
1552년(명종 7) 승과(僧科)에 급제, 대선(大選)·중덕(中德)을 거쳐 교종판사(敎宗判事)·선종판사(禪宗判事)를 겸임했으며, 보우(普雨)를 이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1556년 요승 무업(無業)의 무고로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에 연루되었다 하여 투옥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 1,500명을 모집, 명나라 군대와 합세,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 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가 되었으나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좌선견성(坐禪見性)을 중시하고 교(敎)를 선(禪)의 한 과정으로 보아 선종(禪宗)에 교종(敎宗)을 일원화시켰다. 한편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묘향산 안심사(安心寺),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부도(浮圖)가 서고, 해남(海南) 표충사(表忠祠) 등에 배향되었다.
문집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고, 편저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운수단(雲水壇)》 《삼가귀감(三家龜鑑)》 《심법요(心法要)》 《설선의(說禪儀)》 등이 있다.
현존하는 휴정의 글씨들은 전통적인 서풍에 기반을 두면서도 필획의 크기 및 강약과 결구가 분방하고 획의 길이도 가지런하지 않아서 매우 개성적이다. 이러한 글씨는 난세를 겪은 휴정의 삶과 그의 선리(禪理)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글씨로는 ‘정선사가록’(精選四家綠), ‘어록’(語録, 16세기 후반경) 등이 전한다. 현존하는 휴정의 묵적(墨跡) 중에서는 행서(行書)나 초서(草書)로 쓴 것에서 그의 진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묘향산석가사리함비’(妙香山釋迦舍利函碑)에도 휴정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휴정은 그의 서법이 자유롭고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구사했던 조선 중기의 허목(許穆), 말기의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언급된다. 또한 그의 글씨는 선필(禪筆)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출처/두산백과, 김달진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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